장덕 (ft. 비운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장덕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의 선구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심수봉과 함께 최초의 현대적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받아들여진다.) 1961년 생인 그녀는 1990년 향년 28세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뮤지션이다. 테네시주립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음악적으로 당시 우리나라 음악계 수준을 뛰어넘는 혁신적 코드 진행과 보이싱(화성을 구성하는 음의 배치를 바꾸는 것)을 보여주었다.

장덕의 명곡들은 지난해 30주기를 맞이하여 루비 레코드가 시작한 트리뷰트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아 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유재하, 김현식이나 후세에 사망하여 재평가를 받는 김광석, 신해철 같은 음악가와는 달리 사후 거의 잊혔는데, 그녀의 31주기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후배 여성 아티스트들의 노래 리메이크와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는 것이 반갑다. 이에 지난 14일에는 인디 싱어송라이터 모트가 장덕의 점점 더 가까워져요와 소녀와 가로등을 미니앨범으로 내기도 했으며, 그룹 레인보우도 그녀의 노래 얘 얘를 부른다

그녀가 만든 노래들은 단박에 신드롬이 될 만큼 뛰어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었고, 이런 곡들은 서정적인 가사와 복고 분위기에 요즘 감성과도 딱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김성환 음악저널 리스트에 따르면, 가사가 담고 있는 감정 표현, 그리고 이은하의 앨범에서 선보였던 세련된 편곡, 가벼운 신시사이저와 건반활용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정감 있다고 얘기했다.

장덕은 1회 MBC 서울가요제에서 가수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습작한 곡이 크게 히트한 이후에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쓰기도 하며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내보였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시기에는 미국 현지의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주기도 하였다.

장덕이 이렇게 음악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아버지인 장규상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첼리스트였는데, 이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살시도를 하는 등 불우했던 삶 또한 아버지에 의해서이기도 했다. (우주는 착각이고 한낱 환상에 불과하며, 중요한 건 마음뿐이고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는 장규상이 창조한 철학에 심취하여 가정을 등한시) https://blissstockinvesting.tistory.com/manage